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벌써 한 달이 됐다. 서울 처음 올라와서 자취 막 시작하고 그랬을 때, 국박 가깝다며 좋아라 했었는데 막상 잘 가질 않는다. 새내기 때는 평생 박물관 같은 데서 일하고 싶으니까 국박을 통째로 꿰어 버리자! 라며 중앙박물관 ‘죽순이’를 꿈꾸었던 적이 있는데……. 고고학과 전공 시험 치면서 선생님 이름 잘못 써넣고 B- 맞은 이후로 박물관은 내 운명이 아닌갑다 하고 좌절하였던 적이 있다. 그 뒤로 중앙박물관 가는 것도 뜸해졌지만, 그래도 중앙박물관은 여전히 신전 같은 공간이다. 박물관에 대한 내 얘기를 좀 써보자면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박물관이나 미술관 가는 것도 좀 많이 좋아라 했었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온도 좋고 약간 어둡고 조용하고. 에버랜드 같은 데서 줄서있으면서 서울말로 욕하는 서울쟁이들과 조우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즐거운지! 그때는 물론 할매 취향 소리 들을까 입 다물고 수학여행의 박물관 코스에서 혼자 즐거워했지마는.... 부산의 시립박물관이나 들락거리던 나한테 국립중앙박물관은 꿈의 장소였다.
물론 모든 꿈의 장소가 그렇듯이 그게 눈앞에 오면 좀 달라지긴 한다마는, 여전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좀 신성한 곳이다. <여민해락> 문 닫기 직전에 국박을 다녀왔는데, 하필 여민해락 끝나기 전날 새벽에 실연을 당하는 바람에, 징징거리느라 부은 눈을 얼린 수저로 가라앉히고 가서 불상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했던 것이 한 달 전이다. 덕분에 마음은 잘 가라앉았다. 과연 여민해락(與民偕樂)이다.
미술이론과 다니는 친구와 동행했는데, 함께 박물관을 다닌 지 오래라 낄낄대며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여민해락>전시 평가라든가 어떤 유물이 인상적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보다는, 이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박물관을 가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요즘 한국미술사를 배우고 있는데, 분청사기의 물고기 무늬가 투박하고 서투르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였다. 둘 다 분개했다. 아니 분청사기가 얼마나 귀엽고 이쁜데!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그릇 중에 제일 이쁘구만. 항상 관람이 이런 식이다. 술 따르는 병 같은 걸 보면서, 저런 거 발굴하면 숨겨가지고 집에 갖다놓고 혼자 술 마셔야지, 저런 병은 어떻게 설거지 하나, 하고 헛소리를 한다든가, 쇼핑이라도 하듯이 이게 예쁘니 저게 갖고 싶니 하면서……. 이런 게 또 나름의 박물관 재미 같다. 가장 오래 구경했던 것은 백자철화끈무늬병이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 끈이 술 먹다 남으면 허리춤에 차고 가라고 그렸다고. 저런 생각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사는 게 재미날까, 이런 얘길 하면서 백자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굽 안바닥에 있는 한글 명문은 무슨 뜻인지 여지껏 못 알아냈다.
전시 잘 보고 박물관 식당이 맛있대서 밥까지 잘 먹고 나오는 길에, ‘청자정’을 봤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서, 고려 때 기록에 나오는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정자를 만들어 놓은 거란다. 둘이 보면서 어설픈 기분에 휩싸였었는데, 집에 와서 기사 찾아보니 많은 박물관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그런다. 무식해서 그런가, 고려 사람의 눈이 아니라서 그런가,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청자 지붕이 아름답게 생각되지 않는 게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모든 기사에 쓰여 있는데, 요즘은 다들 랜드마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랜드마크 없이도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좋아한다.




최근 덧글